걱정이 현실이 될까 손톱을 물어뜯고 친구의 농담에도 웃지 못했던 나날들,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도려 잔잔한 행운이 찾아왔으며다시평화를 찾은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죽다 살았네 진짜.."
하지만그 시간도 잠시, 공평하게도 작은 불행은 다시 나를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똑똑-
"왔구나, 어쩐지 조용하다 했어."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낸다. 등허리 흐르는 땀을 숨긴 채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당신이 하는 걱정의 80%는 허상이라며 눈앞에 마주하기 전까지 시련을 인정하지 말라는 글을 쓴 내가 모순적으로 느껴지니 글쓰기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쓰는 게 틀림없다. 내가 쓴 책 내용이 독자를 겨냥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총구는 나를 향해있었다. 어쩌면 ‘작가 신하영’이 ‘인간 신하영’을 위로해 주는 꼴이다. 맞다. 펜을 잡고 있을 때만큼은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이 휘청거리는 인생을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균형을 잡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며 떵떵거리는 것이다. 실제로 클래스를 마칠 때쯤 참여한 작가님에게 '이제 숨통이 좀 트여요' 같은 말을 많이 들었더랬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내가 글쓰기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숨 쉬는 법을 알려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어라 나 좀 멋진데..?)
다시원점으로.
불행불안 형제가 찾아오면 나는 내빽(?)이라고할 수 있는 펜을 부른다.(혀엉~ㅠㅠ) 펜을 잡으면 나는 강해진다. 그리고 사사로운 생각을 써 내려가며 현실을 자각한다. 김영하 작가는 한 프로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글은 써봐야 해요 일단.
써봐야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렇다.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걱정이 망상에 의해 커졌다는 걸 알 수 있고, 간단한 행동으로 그것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기력에 사로 잡혀 움직일 여력이 없어도 글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우리에겐 몇 개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애인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해질 테고, 공적인 자리에선 프로페셔널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신하영은 '인간 신하영'보다 강한 게 분명하다. 이 사실에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모습만 유지하는 것도좋지만나는 공작새의 다채로움이 더 좋다. 약하면서 강하고 예민하지만 너그럽고 순한 것 같으면서도 영악한 신하영.
이렇게 맞이한 23년도 여름. 나는 어떤 인간이 되었는가? 깊게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금씩 성장했고 단단해졌다는 걸. 이것만으로 된 거 아니겠나.
나에게 글이 있듯, 우린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주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당신은 형형색색의내모습을 인정하고 있을까. 나는 묻고 싶다.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사는 게진정한 성숙이냐고. 글쎄, 못된 쪽만 아니라면 조금 변해도 괜찮지 않을까? 바보 같았던 나는 그 누구도 아닌, 강한 내가 위로를 해주었다. 이 사실에 깊은 자존을 느끼는 바다. 바보같은나를사랑하고있다는게느껴지는것이다.미운놈떡 하나더주듯,스스로를탓한만큼 반드시 돌볼줄도알아야한다.
나비포옹이라고아는가?
자신의 몸을 좌우로 두드려 주고토닥토닥하면서스스로안심시켜 주는방법이다.나는클래스가끝날때마다스스로를안아주며고생했다고육성으로말해준다.8월을앞둔 오늘,23년을치열히살았다면나에게 "애썼다"는말한마디쯤 건네보는게어떨까? 마냥 바보 같지만서도 책임감을 가지며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기특한 가. 자, 다들 두 팔 벌려 나를 안아라. 토닥.. 토닥.. 만약, 묘한 기분이 느껴지면 그건 스스로를 위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