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픽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월 : “사랑해”
희진 : “그 말 말곤 다른 말은 없어?”
주월 : “사랑한다는 말 싫어하는 여자도 있나?”
희진 :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는 말 말고,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말을 한 번 해봐.”
주월 : “오 이거 어려운데? 음,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
희진 : “나두.”
주월(하정우)처럼 나도 나만의 표현법으로 내 사랑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전해질 리가 만무하다. 내 연애는 영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랑은 반드시 목에 힘을 주어 내뱉어야만 상대가 알아듣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이후로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준선을 최대한 낮추려고 했다. 애석하게도 상대는 이미 내 곁을 떠나간 이후였다. 내가 했던 것이 짙은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참 바보 같게도 나는 그랬다.
한 달이 지나 다시 친구를 만났다. 안색이 안 좋은 그는 이별 후 얼마 못 가 여자친구를 잡고있는 상태라고 했다.
“없으니까 알겠지?”
내가 말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내가 사랑을 뭔 운명처럼 생각했는지 몰라도 그냥 좋아하는 게 사랑이더라. 근데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표현을 안 했는지. 네 말대로 없으니까 알겠더라고.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안 들어도 괜찮아서 이기적으로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뭐라고 하던데?”
“조금 더 생각해본대. 오래 고민했나 보더라.”
“그렇다고 네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잖아. 단지 표현 방식이 안 맞았을 뿐이지.”
“그러게…. 뭐가 이렇게 어렵냐.”
“원래 헤어지고 나서 깨닫는 거야. 우리 같이 무지한 놈들이 그래.”
친구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나는 어리석은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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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름 몰두한 사랑은 늘 헤어진 뒤에 색이 진해진다. 모든 감정과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져 천천히 사람을 말랑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후회는 사랑의 배설물로 끝까지 사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언제든 잔상이 남기 마련이다. 물론, 친구도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사랑을 사랑이라 일컫지 않으면 죄라도 지은 듯 이렇게 벌을 받는 것 같다. 그녀가 다시 그의 손을 잡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연애에서 친구는 사랑한다는 말을 꼬박꼬박 챙겨서 전할 것이다. 자신이 느껴지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사랑이겠거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사랑을 정의한 적이 없는데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참 웃프기도 하다. 어쨌든 모든 관계는 서로가 함께하는 것이기에 각자의 방식에 맞출 필요가 있겠다. 내 경험상으론 사랑은 말과 행동 그리고 텍스트로도 마구 표현을 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대의 가슴에 애정을 난사하는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있을지.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을 만나 전에 그녀가 겪었던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늘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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