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는 운전대를 잡을 때다.
재밌는 건 출퇴근을 하며 떠올린 영감이 자세를 잡고 작업할 때보다 몇 배는 많다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이 시간을 조금 영악하게 애용하고 있다. 고요한 차 안에서 혼자 운전대를 잡고 있자면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한 생각과 해야 할 일 등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운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전혀 없다. (서울 부산 제외 ^^)
그저 '사색하기 딱! 좋겠다' 싶은 것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 중 운전석에서 떠올린 글이 꽤 많다. 바로 쓸 순 없으니 주차를 할 때까지 입 안에 머금었다가 몇 문장만 빠르게 기록하고 나중에 글로 풀어내는 과정을 이어오고 있다.
3단계 사색은 홀로 산책을 할 때다.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이면 혼자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이땐 혼잣말도 추가가 되어 약간의 요란함이 추가된다. 에어팟을 끼지 않은 채로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자연스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데 철학자 칸트가 오후 3시마다 산책을 한 것처럼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는 주섬주섬 옷을 꺼내어 입는다. 그러다 내 후각을 자극하는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밥까지 먹으면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던 불안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이 3단계 사색은 올해 초, 교토에 갔을 때 절정에 올랐다.
22년을 치열히 달린 탓에 번아웃과 매너리즘이 한꺼번에 왔고 생존본능으로 나는 일본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삶을 재정의하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외로운 거 딱 싫어하는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간다니.. 스스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고, 낯선 땅에 있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에 대한 사색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교토에서 3일 차가 되던 날, 햇빛이 들어오는 골목을 걷던 나는 번개를 맞은 듯한 느낌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했던 답이 예상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에겐 생각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했던 거구나.'
나는 이 순간은 사색의 4단계라고 일컫겠다.
그래, 지금 삶을 정의하고 말고 가 아니라 나에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것도 그런 게, 그간 서울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던가. 그리고 여행자인 나는 인생이 아니라 오늘 먹을 저녁과 내가 가야 할 곳을 고민하는 것에 이미 바쁜 터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그제야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혼자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그 골목과 2023년 2월 12일 11시 40분을.
다시 그곳에 가면 그때보다 조금 더 후련한 마음을 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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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을 다녀온 뒤 기획한 클래스가 바로 '짙은 사색이 필요한 당신에게'다.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행복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망원에 모여 많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글을 적었고 그들이 완성한 책 뒤에 나는 이런 문구를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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