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을 하는 사람을 따라 횡단보도를 우르르 건너는 사람들을 봤다. 도로를 가로지르면서도 자신이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던 당신. 처음 발을 떼었던 사람은 뭐가 그리 바쁜지 사람들 사이로 홀연히 사라진다. 그 속에서 나는 무지함을 느낀다.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누구를 탓해야 하나. 그들은 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을까? 아, 횡단보도가 짧아서 그런 걸까. 그래도 그렇지. 한 명도 빠짐없이 따라 건너는 건 나에게 꽤 무서운 장면이었다.
나도 저런 상황에 몸을 움직인 적이 있다. 뛰쳐나가는 사람을 따라 몇 걸음 걷다 빨간불인 걸 확인하고 얼른 뒤로 돌아왔는데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멋쩍게 머리를 매만졌었다. 만약 저 횡단보도에 내가 서 있었다면 과연 건너지 않았을까?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내 무지함이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잘못을 인지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 속의 한 사람이 되더라도 잘못을 인지하고 한 번쯤은 후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싶다. 후회가 가득하더라도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았다는 말을 자신 있게 내뱉고 싶다. 겉으로 보면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지혜와 강단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자각하고 선택하는 일은 성숙함을 위해 불가결한 과정이다. 줏대가 없으면 변하는 상황에 매번 당할 수밖에 없다. 그거 아는가? 진짜 강한 건 ‘억제력’이라 했다. 쉽게 말해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상황을 억제하는 거다. 여담이지만 세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건 강대국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하면 당한다. 내실이 없으면 세상은 나의 근간을 쉴 틈 없이 흔들어놓는다. 비단 평화에만 빗댈 게 아니라 삶에도 이 공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번 휘둘리는 건 약해서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만약 당신 강했다면 그때 혼란에 빠졌을까? 절대 아니다. 우린 어렸을 적부터 선택을 강요당했고 그 대가로 자유의지를 잃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튼튼한 자존과 주관적인 철학만이 우릴 구원해 줄 거라는 것을.
내가 생각한 강함의 척도는 집, 차, 옷처럼 보이는 요소였다.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나는 SNS에 중독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잘 보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전부터 궁상맞게 살아왔기에 일부러 더 그런 것도 있었다. 친구한테 얻어먹고, 돈 때문에 싫은 소리 하기 싫었다. 애인이 있다면 소고기쯤은 그냥 사주고 싶었고, 가성비나 할인율만 좇으며 쇼핑하는 것도 지겨웠다. 예전의 나는 돈 일이만 원에 울상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살기로 했다. 몸만 혹사하면 한푼이라도 더 벌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출판과 글에 전문성이 생겼고 한 영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주말은 없었고 번아웃과 매너리즘, 공황장애를 당연하듯 겪었다. 쉬는 건 죄였으니 아파도 일했다. 돈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간사하지 않은가, 돈을 벌수록 욕심은 끝없이 많아졌고 그 연장선에서 고군분투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깃발을 꽂겠다는 야망은 이제 결혼과 아이, 내 집 마련과 부모님의 부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점은 껍데기에서 벗어났다는 거다. 잘 사는 걸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되고 열등감과 질투, 상대방의 이기심과 배신에 더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억제력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30대를 보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나약하고 물렁하지만, 이제는 자잘한 상처쯤은 웃어넘길 수 있고 그 누가 나를 흔들어도 목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있다.
인생에도 늘 병충해가 찾아온다. 면역력은 지난 과오와 상처에서 생기지 온실 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어제보다 강한 사람이다. 이제 남들이 쉽게 넘보지 못하는 아우라를 만들자. 입꼬리를 올리고 어깨만 펴도 못할 일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올곧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쪽팔리게 살지 말자. 온갖 탐욕이 나를 잡아먹어도 스스로 잘못됨을 깨닫고 끝끝내 맑은 시야를 되찾겠노라 다짐하자. 누구든 잘못은 할 수 있으니, 타인의 실수는 포용하고 더욱 진실하게 살아가며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줏대를 가지고 일상에 보풀을 만들지 않으면 저기 저 구름처럼 유유자적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 어떤 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되면 무지한 사람의 행동에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결백함이 삶이 기둥이 된다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허리가 곧게 펴지는 기분이다. 조금 늦더라도,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깨끗하고 당당하게 사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