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쓸모 있어야 했다. 전세를 역전시킬 키는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어렸을 적 릴레이 계주를 하면 역전하는 것보단 따라 잡히지 않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어디서든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라지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나 어디 갔냐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면 했다. 하영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거 하영이가 잘하는데, 이런 말이 내가 없을 때 세상에 둥둥 떠다니길 바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것을 영악하게 찾았고, 지금의 나는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아닌가. 내 능력을 키우고 나니 사람으로서의 ‘쓸모’가 내 신경을 건드린다.
‘나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작가인가?’
‘같이 있을 때 행복해지는 사람인가?’
나는 불안했다. 내 가치가 유한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슬퍼도 웃었고, 싫어도 괜찮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소매부터 걷었고 상처를 받으면 웃어넘기기 바빴다. 공허한 나날이 이어지면 나의 쓰임새가 모자랐다며 자책했고, 그렇게 자기애를 상실했다. 내 여린 자아를 존중하기 전에 상대를 먼저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누군가의 개였고, 광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