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다.”
미친 것 같지만 놀고 싶은 걸 어째.
몇 달 만에 떠나는 여행이나 금요일 밤이 달콤한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주말에 자는 낮잠은 얼마나 달콤한지, 일요일 오후 4시쯤 일어나 멍하니 창밖을 보면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휴식이 달콤한 건 남들이 모르는 고행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사는 사람은 쉼의 단맛을 모른다. 어화둥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당신과 나는 어딘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음은 여전히 사춘기지만 한쪽으로는 더 나아갈 생각만 하는 우리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철없던 동네 친구 놈이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것을 보면 기가 차고 코가 찬다. 찡찡거리면서도 등에 책임감을 하나씩 더 얹히고 있는 거다. 언젠가 한 작가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물었다.
“만약에 완벽한 자유가 생기면 어떨 것 같나요?”
작가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듯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가 싫어요."
“왜요?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아니요. 너무 자유로우면 무서울 거 같아요. 그래도 약간의 울타리가 있는 게 안심이 돼요.”
맞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지독한 모순이지만 울타리 안에서 자라온 우린 어느 정도의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걸 더 추구한다. 나도 그렇다. 혼자 훌쩍 떠나며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하고 싶은 걸 참으며 몇 개의 큰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고 싶다. 그래야 나태해지지 않으니까.
인간이 제일 야만적일 때는 게으르고 불안정할 때다. 이 못난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건 책임져야 할 것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자유가 있어도 십리도 못 가 발병 날게 뻔하다. 그러니 시원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다시 시작하자. 열심히 벌어야 사랑하는 사람 입에 맛있는 것도 넣어주고, 새 옷도 사지. 삶이 퍽퍽해도 틈 사이로 어떻게든 놀고 있으니 마냥 놀고 싶은 건 일시적인 투정에 불과하다.
일탈을 꿈꾸면서도 현실에 사력을 다하는 당신. 그 모습 자체로 이미 충분히 멋지다.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천천히 나아가보자.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고, 옳은 길 위에 서 있다. 나는 그런 당신을 깊이 응원한다. 여기, 당신의 동지가 있다는 걸 잊지 말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