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미련 없이 그 사람을 떠나보내리라고 마음먹은 순간 세상은 분명 바뀐다. 막혀있던 시야는 펄쩍 트이고 모든 빛이 밝아질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종일 목구멍 한가운데 울음을 가두어놓고 서류를 넘기고 밥을 먹고 이불을 덮는 행위가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나는 가늠할 수 없음에 그대의 표정을 더욱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미소를 지을 때 떨리는 눈가에는 맨홀 같은 슬픔이 있었다. 퇴근길에 지은 표정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다면 내가 얼마나 생기가 없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어쨌든 오래 생각하다 결정한 안녕일 테니 그것을 지지해 보도록 하자.
이제 사랑했던 것을 등지고 매정히 걸을 수 있을까?
작은 기척이라도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 뒤돌아설 텐데. 근데 바라보는 건 괜찮다. 그리워하는 것까지 참으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많이 힘들었을 당신. 지나간 것에 손을 흔드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다만, 나는 당신이 몸을 돌려 과거로 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면서 배운 몇 가지 중 하나는 미련은 쫓아가면 더욱 큰 허상이 되고 또 다른 미련을 잉태한다는 거다. 식어버린 차에 다시 물을 붓는다고 해도 배어 나온 맛은 이미 사라졌으며, 과거의 인연을 그리워해도 더는 그때의 사랑이 아니다. 우린 결국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니 허탈감을 느껴도 괜찮다. 삶에서 떠났다면 축복을 빌어주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미련이라는 건 없으니 발끝에 힘을 주고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옛사랑을 처량히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쓸쓸한 건 딱 거기까지다. 이제 맑은 눈으로 무엇이든 바라보면 된다. 사랑할 건 이 세상에 천지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