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닿는 대로 자국이 남을 것 같은 물렁한 나는 나약한 동시에 가장 감성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릴스에 뜬 사별 영상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인류애가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고, 노을 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운전할 땐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달리던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넉넉한 돈인가, 안정된 사랑인가, 아주 긴 휴식인가. 아무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으니 답답한 건 여전하다. 다음 날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유기견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을 죽을 듯이 뒤쫓는 영상을 봤다. 차를 따라오는 말티즈를 도저히 보낼 수가 없어 가슴에 품은 그 사람.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아이 하나만 보고 살았을 텐데…
샤워를 하다 빈 샴푸통을 만지작거렸다. 새로 살 땐 조금 더 상큼한 걸 사볼까? 계란프라이를 3개나 해 먹으며 문어와 인간의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해진 파자마를 입고 피아노를 쳤다. 엄마한테는 아직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고 달리기를 하며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봤다. SNS를 보며 몇 번 한숨을 쉬었고, 회사에 생긴 귀찮은 일을 내가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슬픈 영상을 보고 눈물이 나지 않으면 홀로 괜찮아졌다 판단하는 편이다.) 뒤차가 빵빵거려도 라디오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고, 친구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짜증 대신 상냥함을 보였다. 가난했던 내 마음이 어떻게 다시 부를 이루었는지, 어느 날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도망치지 않고 살았으니 가여운 내게 신이 선물을 주신 게 아닐까.
인생이 아무리 롤러코스터라고 해도 가끔은 심해까지 내려가는 내가 두렵다. 하지만 그냥 살아만 내어도 다시 올라오는 게 인생이니 하루를 충실히 보내기만 해도 다시 궤도를 되찾을 수 있다. 어쩌면 마음의 가난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음의 부도 없는 것이니 인생사 공수래공수거가 아닐까. 생각난 김에 빈 종이에 단어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