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낭만을 앗아갔다. 시간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눈 몇 번 깜빡이면 끝낼 수 있게 되니 기다림은 더는 설레는 일이 아닌 지루함이 돼버렸다. 다 큰 어른들이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건 빨리빨리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서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불편함의 묘미를 알고, 과정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너무나 빠른 세상에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게 없는 요즘, 사람들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기 바쁘고, 타인의 추천에 자신의 취향을 내어주고 있다. 방대한 표현은 이모티콘 하나로 대체되고 만남도 메시지 하나에 끝이니 뭐든 게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문득, 옛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진중하고 글을 잘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전달하려면 쓰는 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수십 번 고쳐 쓴 이메일로 감정을 나눌 때가 있었다. 아니 그전에는 오로지 편지로 마음을 전했으니, 그들이 썼던 연애편지는 로맨스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90년대의 한 청춘이 나눈 편지를 본 적이 있다. 사랑을 탐구하는 나로선 그것만큼 좋은 예술이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애정이 깃들어 있고 마주하지 않아 더 애잔하니 얼마나 말을 아껴 쓰겠나. 꾹꾹 눌러쓰는 편지는 우릴 함축적이게 하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구구절절할 수 없다. 그런 불편함이 누군가를 시인으로 만든다. 온 힘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고 그것을 봉투에 담고 우체통에 넣으면 상대에게 도착하기까지 며칠이 걸릴 것이다.
이런 기다림까지 모두 사랑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