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냈어?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나는 잘 지냈어. 바쁘게 살아서 가끔은 내가 뭘 했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잘 지낸 것 같아. 아프지 않으려고 영양제도 엄청 먹고 운동도 좀 했는데 지금은 다시 배가 튀어나왔네. 이런. 아! 그리고 추석에는 부산에도 다녀왔어. 가서 엄마밥도 먹고 강아지랑 산책도 하고 술도 진탕 마셨어. 나의 고향 부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 이제 귀한 일이 되어서 충분히 만끽하려고 해. 철없던 시절엔 친구만 좋아해서 숟가락만 내려놓으면 나가기 바빴거든. 한 상에 둘러앉아 갓 끓인 된장찌개를 먹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 이제는 알아.
서울에 상경한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서울은 치열하고 바빠. 맨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한 일이 뭐냐면 에어팟을 사는 거였어. 캐리어를 끌고 사당역에 가서 현금 15만 원을 주고 당근을 했지. 에어팟을 산 건 촌놈티를 벗어내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혼자 사색할 일이 많아질 거라 생각해서야. 그렇게 밑바닥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와 이렇게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네?
나는 12년 동안 글을 쓴 작가고, 지금은 망원동에서 동료 2명과 작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 이름은 딥앤와이드! 내가 책을 만들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인생은 역시 한 치 앞도 모르는 일이야. 지금은 되게 좋아.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디자인 실력도 꽤 많이 늘었어. 더군다나 작가인 내가 출판계에 있다는 것에 나름의 프라이드도 느껴. 글을 쓰는 건 늘 즐거워. 영감이 떠오르고 10분 동안 숨죽인 듯 글을 쓰고 나면 아주 먼 거리에서 3점짜리 슛을 넣은 것처럼 환호하게 돼. 묵은 감정이 마음에 없으면 차분해지거든? 그래서 클래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매력을 알려주고 있어.
나 참 바쁘지? 맞아. 작년 이맘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이야기>를 집필하기 위해 제주도에 있었는데.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라. 넌 어때? 올해도 역시나 다사다난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충분히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거야. 내가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 내가 너에게 안부를 묻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야.
그래서 넌 어땠어?
좋은 가을을 보내고 있어?
별 일은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