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먼 과거가 되었으니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용서라기보단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흉터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새살이 나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말 그대로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저대로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인생을 살고 있고 그 사람도 적당히 불행하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저도 용서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저 또한 양날 같은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내 행복을 좇으면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진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제가 아픈 건 더 싫기에 평온할 수 있는 방법을 과감히 택했습니다. 엇박자에서 오는 불행이 정말 두려웠거든요.
문득, 제가 한 것이 비겁한 도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땐 미리 열어둔 비상구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으니까요. 멀리 도망치다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면 혼자 남겨진 한 사람이 보입니다. 저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데 이미 멀리 와버린 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죄책감과 후련함이 섞인 기묘한 감정에 저는 잠시 발을 동동 구르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립니다. 돌아갈 마음은. 아니, 돌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도망쳐온 거리만큼 그 사람의 마음을 힘껏 베어버린 저.
그렇게 누군가에게 악역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참 좋은 사람이었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지만, 아마 당신에게는 지독한 인간이라고 불릴지도 모릅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긴 세월이 무색하게 제 마음은 상처를 준 만큼 다시 평온을 되찾습니다. 두 얼굴의 사람 같아 괜히 등골이 오싹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제 모습이 가장 보통의 인간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상처만 받고 엉엉 울면서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전에는 상처를 주는 일보다 내가 상처받는 게 더 나은 것 같아 결정을 미룬 적도 있었고 희생을 하면서도 알아주지 않으면 괜히 속상해 한껏 이기적이고 싶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이렇게 상처를 주는 일도, 받는 일도 제대로 하질 못하니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계에서는 사력을 다해도 늘 후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고 죄책감도 늘 꼬리표처럼 있었으니 맞은편 친구에게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라고 말하는 건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저의 모순이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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